주식의 적정 가치 구하기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
이 말은 누구나 아는 말이다. 당연한 것 아닐까? 현실을 보자면 투자에서 무엇보다 어렵고 투자의 고수조차 번번이 실패하는 난이도 최고의 투자 전략이다. 두 가지 모두에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둘 중 하나만 어느 정도만 해도 성공한 투자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다만 유의할 점은 이 말이 '저점에 매수하고, 고점에 매도하자'라는 것과는의미가 다르다. 차트를 보면서 저점인 순간에 매수하고 고점으로 보이는 변곡점에 매도하는 기술적 매매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가치와 가격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매수 매도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단기간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가격과 가치의 갭은 곧 수익실현 기회를 뜻한다. 가치투자의 대명제는 주가는 장기적으로 가치에 수렴하므로 시장의 비효율적인 단기 타이밍을 이용해 차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모든 주식의 가격이 기업의 적정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는 시장은 재미없는 시장이다. 아무도 돈을 벌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격과 가치의 부등식
가격 ≤ 가치 : 싼주식
가격 ≥ 가치 : 비싼 주식
우선 싼 주식과 비싼 주식 개념부터 이해하자. 명품 가방의 대명사이자 업계 최고가 상품으로 알려진 에르메스의 버킨백 가격은 몇십만 달러이다. '너무 비싼 걸까?' 그깟 가방 따위가 머라고 자동차 몇 대를 살 수 있는 가격이라는 거야? 하지만 그 가격은 시장에서 통한다. 더구나 버킨백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품을 사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버킨백의 유한성이 시장가격 이상의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통용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서의 가치는 가방 자체의 상품 가치를 넘어 브랜드의 가치, 부의 상징이라는 무형자산의 평가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버킨백이 몇십만 달러에 팔려도 그리 비싸지 않은 상품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그 가치를 따져보자.
· 상품 가격: 20만 달러
· 상품 가치: 가방, 에르메스 브랜드가치, 사회적 상징성, 계속 상승하는 가격을 합친 금액
물론 이 가치가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무겁고 노트북 하나 넣고 다니기도 힘들어서 실용성이 떨어지는데 예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돈은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그 가방은 너무 비싼 상품은 아니다. 단지 가방의 가치를 낮게 책정할 뿐이다. 상품을 소비할 의향이 없으니 가격을 놓고 싸다 비싸다 판단하지도 않는 입장인 것이다. 너무 비싸다는 것은 상품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소비욕구가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인정하는 가치 대비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주가 추측이 아닌 적정 가치 추정
가치평가를 할 때 기업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기업 가치 대비 현재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면 시장의 높은 기대심리에 의해 현재 주가에 이미 미래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이 경우 기대한 만큼의 실적이 나오는 것만으로는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다. 아직 주가에 반영되지 않은, 즉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어떤 호재가 발생해야 현재 주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한다. 미래 가치에 기대심리가 반영된 주가는 그 가치를 실현해도 그 수준 그대로 있고그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면 오히려 하락한다. 바꿔 말하면 미래 성장을 이미 반영한 주가에 주식을 매수할 경우 성장을 실현해도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한마디로 주식을 비싸게 산 것이다.
반대로 주식을 '싸게 산다'는 것은 가치평가에 따른 적정 주가보다 실제 주가가 한참 밑도는 수준에서 매수하는 것이다. 100달러가 적정 가치인 주식이 현대 75달러에 거래가 되고 있다면, 이는 시장이 기업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거나 기업 가치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기업 자체 문제나 혹은 외부 요인이 있다는 뜻이다. 기업 가치를 100달러라고 확신한다면 75달러인 현재 매수하는 것은 주식을 싸게 사는 셈이다.
다만 가격은 시장에서 매매하는 수치로 쉽게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숫자다. 그야말로 그날, 그 순간 매수자와 매도자가 거래하기로 합의한 수치다. 하지만 가치는 다르다.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산정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시장 참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기도 쉽지 않은 숫자다. 기업의 적정 가치가 무엇인지 그 기준이 획일적이지 않고 산정하는 작업도 간단하지 않으니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구나 단기적으로 볼 때 가치와 가격은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듯해서 가격보다 가치가 외면당하는 것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적정 가치를 정립하지 않으면 매수 시점에 내가 싸게 사는지 아니면 비싸게 사는지 기준이 사라진다. 스스로 가치를 계산하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면 전문 투자자의 의견이라도 참고하면서 적정 가치를 예측하는 판단력을 키워보자. 전문 투자자의 의견도 틀릴 때가 있고 그들이 말하는 가치도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한 기초 작업을 해놓은 보고서를 참고하는 것은 기업과 섹터의 안목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적정 가치 기준이 없으면 시장에서 부르는 값(호가)에 살 확률이 높고 타이밍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치를 정립하지 않은 투자자는 언제 매수하든 비싸지도 싸지도 않아 그저 시장가격 움직임만 관망할 수밖에 없다. 주식 초보자가 상승하고 있는 주식은 사고 하락하는 주식은 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는 그 반대로 매매해야 투자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물론 오르고 있는 주식을 사서 더 올랐을 때 매도해도 수익실현은 가능하다. 다만 가치를 정립하지 않아 언제 매도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어서 어려울 뿐이다.
"오를 것 같은 주식을 사서 떨어질 것 같을 때 팔면 되잖아" 이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의 혜안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오를 것 같은 주식'과 '떨어질 것 같을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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